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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 「달빛」은 악보만 보면 어려워 보이는 곡은 아닙니다. 음표가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곡은 아니라 저도 금방 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악보는 금방 봤지만 곡에서 요구하는 소리를 만드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녹음을 들어보니 머릿속에서 그린 달빛과는 거리가 먼, 뿌옇고 탁한 소리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1. 소리가 뭉개지는 이유
「달빛」은 드뷔시가 1890년 무렵 쓰기 시작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의 세 번째 곡입니다. 첫 페이지는 아주 여리게 시작하고, 두세 음을 함께 누르는 화음이 붙임줄(같은 음을 다시 치지 않고 이어서 끌어주라는 표시)을 타고 박자를 넘어 길게 울립니다. 드뷔시는 인상주의 작곡가이니 소리도 안개처럼 퍼져야 한다고 생각한 저는 한 마디 내내 페달을 밟고 있었습니다. 앞 화음과 뒤 화음은 완전히 다른 화음인데도 계속 밟고 있으니, 물감을 덧칠한 것처럼 지저분하게 섞여 들렸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드뷔시 본인은 인상주의라는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곡 악보에도 오른쪽 페달을 언제 밟고 떼라는 표시는 거의 없어서, 결국 치는 사람이 본인의 귀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화음 속 음을 전부 윗소리와 같은 힘으로 누르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화음 속 가운데 음들을 내성이라고 하는데 내성은 맨 위 음과 구별되는 소리로 작게 쳐야 합니다. 멜로디인 맨 위 음보다 내성이 더 크게 나면서 소리가 한층 두꺼워졌습니다.
2. 원인을 찾아간 과정
어디서 소리가 꼬이는지 알고 싶어서 페달을 아예 떼고 손으로만 쳐 봤습니다. 그러자 어느 음이 튀는지 그제야 들렸고, 내성이 멜로디를 덮고 있었습니다. 음이 뒤엉킨 소리와 흐릿한 분위기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습니다. 음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들리는 상태에서 전체가 작은 소리로 겹칠 때 오히려 드뷔시다운 소리가 났습니다. 페달 없이 칠 때는 손가락으로 음을 최대한 이어주는 게 좋습니다. 다음 음을 먼저 누르고 나서 앞 음을 떼는 식으로 치면 페달이 없어도 소리가 어느 정도 이어지고, 페달에 기대는 습관도 줄어듭니다. 그 뒤로는 멜로디만 따로 노래하듯 쳐 봤습니다. 멜로디를 혼자 쳐 보면 어느 음을 향해 나아가는지, 어디서 숨을 쉬어야 하는지가 잘 들리는데, 그 흐름이 화음 속에 넣은 뒤에도 그대로 들려야 합니다. 그래서 같은 화음을 다시 치면서 내성은 건반 바닥까지 누르지 않고 살짝 닿게만 했습니다. 손가락마다 힘을 다르게 주는 게 너무 어색해서 같은 두 마디를 수십 번은 쳤던 것 같습니다.
3. 맑은 소리를 만든 방법
페달은 화음이 바뀔 때마다 깨끗하게 갈아 밟기 시작했습니다. 건반을 누른 직후 페달을 잠시 뗐다가 바로 다시 밟으면 앞 소리는 지워지고 새 화음만 남아서, 울림은 계속 이어지는데 소리는 맑아집니다. 페달을 바닥까지 밟지 않고 절반쯤만 밟는 것을 반페달이라고 하는데, 여린 소리가 길게 이어지는 이 곡에서는 이게 꽤 도움이 되었습니다. 페달을 바꾸는 타이밍은 녹음에서 화음이 바뀌는 순간만 골라 들으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리가 잠깐 끊기면 너무 빨리 뗀 것이고, 앞 화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너무 늦게 뗀 것입니다. 손가락은 멜로디 음에만 무게를 조금 더 싣고 나머지는 가볍게 누릅니다. 이렇게 바꾸고 다시 녹음했더니 똑같이 여린 소리인데도 멜로디가 훨씬 또렷했습니다. 느린 곡인데도 마음이 급하면 페달이 금방 다시 어긋나서, 지금도 연습을 시작할 때는 페달 없이 한 번 쳐 보고 나서 페달을 더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돌아보면 '인상주의 곡이니까 흐릿해야 한다'는 생각 하나가 소리를 뭉개고 있었습니다. 페달을 화음이 바뀌는 곳마다 깨끗하게 갈고 멜로디에 무게를 싣는 것만으로도 소리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달빛」이 탁하게 들린다면 페달을 떼고 한 번 쳐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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