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베토벤이 20대 후반에 쓴 피아노 소나타 7번은 첫 부분부터 끝까지 밝고 경쾌하게 달려 나가는 곡입니다. 저는 레슨을 받으며 콩쿠르를 준비하던 때 이 곡을 배웠는데, 단 한 마디의 트릴 때문에 레슨에서만 50번 넘게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무엇이 문제였고 어떻게 연습해서 결국 성공했는지, 이 곡을 모르는 분도 이해하실 수 있게 차근차근 적어 보려고 합니다.
1. 긴 트릴이 자꾸 무너졌던 이유
트릴은 바로 옆에 붙은 두 음을 아주 빠르게 번갈아 치는 연주법입니다. 악보는 일정한 길이의 칸으로 나뉘어 있고 이 칸 하나를 마디라고 부르는데, 이 곡의 52번째 마디에서는 오른손이 트릴을 그 마디가 끝날 때까지 끊지 않고 이어 가야 합니다. 짧은 트릴은 한 번에 휙 치고 지나가면 되지만, 이렇게 길게 이어지는 트릴은 끝까지 같은 속도와 고른 소리를 지켜야 해서 훨씬 어렵습니다. 저는 늘 트릴이 마디 끝에 닿기 전에 무너졌고,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길게 버틸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별다른 기준 없이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많이 굴리려고 했습니다. 게다가 혼자 연습할 때는 곧잘 되다가도 레슨이나 콩쿠르 장에만 가면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나중에 레슨을 통해 알게 됐는데, 그때 제 손에는 저도 모르게 불필요한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습니다. 손에 힘이 들어가면 손가락이 굳어 트릴을 오래 이어 가기 힘든데, 긴장되는 자리일수록 그 힘이 더 커졌던 것 같습니다.
2. 두 달 동안 한 마디를 붙잡고 한 연습
이 한 마디를 해결하려고 하루에 한 시간씩 두 달 동안 거의 이 부분만 붙잡고 있었습니다. 다른 곡과 이 곡의 나머지 부분도 연습해야 했기 때문에 한 마디에 그만큼 시간을 쓰는 게 쉽지 않았고, 계속 실패하는 제 자신이 너무 밉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레슨에서 선생님께서 무작정 트릴을 많이 굴리려 하지 말고, 왼손이 한 음을 칠 때 오른손은 두 음을 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보면 어떻겠냐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날 레슨이 끝나자마자 연습실로 달려가서 이 방법을 어떻게 하면 어색하지 않게 이어 갈 수 있을지 이것저것 해 봤습니다. 처음에는 두 손을 맞추느라 뚝딱거리며 쳤는데, 느린 속도로 계속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3. 왼손 한 음에 오른손 두 음, 그리고 힘 빼기
제가 찾은 방법은 오른손 두 음에 왼손 한 음을 맞춰 가다가, 마지막 음에서만 오른손 세 음에 왼손 한 음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음의 개수를 정해 놓고 치니 얼핏 보면 계산하면서 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기준이 생기니까 더 빨리, 많이 쳐야 한다는 조급함은 사라지고, 흐름을 일정하게 이어 가는 데 마음을 쓸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하나 세면서 치더라도 음악이 어색하게 들리지 않을 때까지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따로 세지 않아도 손이 먼저 기억합니다. 여기에 트릴을 칠 때마다 손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지 계속 확인했더니, 드디어 한 마디 전체를 안정적으로 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고 나니 트릴이 나온다고 미리 겁먹을 필요도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두 손의 음을 차분하게 세면서 치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싫어하던 한 마디를 실수 없이 치게 됐을 때 느낀 쾌감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이 곡 덕분에 긴 트릴은 힘을 빼고 두 손의 음을 세면서 치면 된다는 걸 배웠고, 앞으로 어떤 곡을 치든 이 방법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긴 트릴 앞에서 막혀 계신 분이라면 왼손 한 음에 오른손으로 몇 음을 칠지부터 정해보시길 권합니다.
'피아노 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쇼팽 화려한 변주곡 Op.12, 양손 스타카토 연습법 (0) | 2026.08.27 |
|---|---|
| 쇼팽 에튀드 10-1 연습법, 고른 소리 비결 (0) | 2026.08.26 |
| 바흐 평균율 1권 3번, 푸가에 한 달 걸린 이유 (0) | 2026.08.24 |
| 멘델스존 판타지, 무대에서 템포가 빨라질 때 (0) | 2026.08.23 |
| 쇼팽 프렐류드 16번, 자꾸 빨라질 때 (0) | 2026.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