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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곡

바흐 평균율 1권 3번, 푸가에 한 달 걸린 이유

여운기록자 2026. 8. 24. 22:29

목차


    바흐 평균율 1권 3번 푸가 악보(출처: IMSLP)

    바흐 평균율 1권 3번은 선생님께 처음으로 실기곡으로 받았을 때 악보를 펴자마자 겁부터 났던 곡입니다. 조표에 샵이 7개나 붙어 있고, 그때까지 제가 쳐본 곡 중 샵이 가장 많은 곡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곡을 연습하면서 겪었던 일을 처음부터 적어보려고 합니다.

    1. 샵 7개와 푸가, 두 개의 벽

    이 곡이 어려운 첫 번째 이유는 조성입니다. C#장조는 도부터 시까지 모든 음에 샵이 붙기 때문에, 정신을 조금만 놓아도 샵을 붙여야 할 음을 그냥 마음대로 치고 있는 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샵을 한 번 더 올리라는 더블샵까지 나오는데, 저는 처음에 이 부분을 자꾸 놓쳐서 레슨 때 주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더블샵은 원래 음보다 반음 두 개를 올려 치라는 표시라서, 예를 들어 파에 더블샵이 붙으면 실제로는 솔 건반을 눌러야 합니다. C#장조는 이론으로는 알고 있던 조였지만, 제가 스케일 연습에 쓰던 하논 39번에는 이 조의 스케일이 없어서 손으로 직접 쳐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논에는 같은 건반을 쓰는 D♭장조만 실려 있어서, 샵 7개로 적힌 악보는 이 곡에서 처음 마주한 셈이었습니다. 그래서 음 하나하나가 계산 문제처럼 느껴졌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푸가입니다. 푸가는 여러 개의 선율이 동시에 따로 움직이는 음악이라, 모든 음을 똑같은 크기로 치면 주제 선율이 뒤섞여서 무엇이 무엇인지 제대로 들리지 않습니다. 제게는 프렐류드보다 이 푸가가 훨씬 더 큰 벽처럼 다가왔습니다. 프렐류드는 샵이 많아서 음이 헷갈린다는 점만 빼면 크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푸가는 음을 맞게 치는 것만으로는 음악이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2. 머리로 하루, 손으로 한 달

    저는 바흐 푸가를 새로 받으면 항상 성부(동시에 흘러가는 각각의 선율)마다 다른 색 형광펜으로 표시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푸가를 칠 때 각 성부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한눈에 보이지 않아서 생긴 습관입니다. 이 곡도 가장 먼저 형광펜을 칠했고, 덕분에 눈으로는 어떤 음이 어느 성부인지 금방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머리로 아는 것과 손으로 치는 것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어느 성부에서 주제 선율이 나오는지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도, 세 개의 선율을 동시에 치면서 각각을 살려내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성부를 파악하는 일은 하루면 충분했지만, 각 성부가 따로 들리도록 손에 익히는 데는 꼬박 한 달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 곡이 너무 어려워 중간에 선생님께 곡을 바꿔달라고 말씀드릴까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피아노를 치면서 이렇게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 곡만큼은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런 곡을 주신 선생님이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 시기를 겪으면서 악보를 정확히 읽는 것과 그것을 음악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다른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3. 양손 읽기와 하루 3시간의 배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제가 정한 건 하나였습니다. 연습량으로 승부를 보자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곡을 치면서 제 실력을 끌어올려 준 건 연습 방법과 시간 배분이었습니다. 저는 어떤 곡이든 처음부터 양손으로 악보를 읽습니다. 한 손씩 읽는 것보다 시간은 더 걸릴지 몰라도, 그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시간을 줄여주는 연습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난히 손이 꼬이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한 손씩 떼어내서 충분히 연습한 다음 다시 합칩니다. 그리고 하루 3시간을 연습하면서 비교적 쉬운 프렐류드에는 1시간, 어려운 푸가에는 2시간을 쏟았습니다. 푸가를 칠 때는 틀리지 않는 것보다 지금 내가 주제 선율을 잘 들리게 치고 있는지를 계속 생각하며 쳤습니다. 레슨에서 주의를 받았던 더블샵도 따로 챙겼습니다. 더블샵이 나올 때마다 이 음이 실제로 어느 건반인지 속으로 되뇌었는데, 이 습관은 지금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꾸준히 하다 보니 이 곡은 제가 쳐본 바흐 프렐류드 푸가 중 가장 자신 있는 곡이 되었습니다.

    이 곡을 치고 나서는 샵이나 플랫이 많은 악보를 봐도 예전처럼 겁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처음 느낀 두려움과 실제 곡의 난이도는 다를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배웠기 때문입니다. 만약 조표 앞에서 망설이고 계신다면, 오늘 제가 적은 순서대로 차근차근 시작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