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드라마를 많이 봐온 저로서는 의학 드라마에서 천재 의사가 불가능한 수술을 해내는 장면은 이제 좀 식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를 보고 나서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건 '의사가 얼마나 대단한가'가 아니라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였기 때문입니다.중증외상센터, 의료 시스템의 현실드라마를 보기 전에 저는 한 가지를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대학병원에 가면 적어도 외상 전문의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속 한국대학교 병원 중증외상센터의 현실은 달랐습니다. 외상외과 전문의는 없고, 항문외과나 신경외과 등 일반외과 전임의들이 돌아가면서 응급 당직을 서는 구조였습니다.이 설정이 단순한 극적 과장이 아니라는 점이 제게는 더 충격이었습니다. 실..
이 작품은 법정 드라마인데 재판 장면보다 국밥 먹는 장면이 더 많습니다. 처음에 봤을 때는 법정 드라마에서 재판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아 그게 조금 의아했는데, 다 보고 나니까 그게 이 드라마의 전부였습니다. 드라마 서초동은 법정에서 변호사들의 화려한 승리를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닙니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고, 같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퇴근 후 맥주 한 잔에 하루를 털어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입니다. 작품을 보는 내내 "저 사람들도 나처럼 그냥 하루를 버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느낌이 꽤 오래 남았습니다.서초동 리뷰, 사람 중심 서사드라마 속 변호사 안주형은 9년 차 어소(associate)입니다. 여기서 어소란 로펌에 소속된 파트너 급이 아닌 소속 변호사, 쉽게 말해 월급을 받..
최민식 배우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 맨 끝줄 소년의 원작은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동명 희곡입니다. 조용히 맨 뒷자리에 앉아 모두를 관찰하던 한 소년이 글쓰기 하나로 어른의 삶을 통째로 침범하는 이야기인데, 솔직히 처음 줄거리를 접했을 때 가슴이 서늘해졌습니다. 관찰자가 어느 순간 이야기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는 구조가, 읽는 사람도 예외가 아니라는 걸 알아챘을 때 더욱 그랬습니다.맨 끝줄 소년, 원작 배경희곡 은 문학 교사 헤르만이 학생들의 장문(長文) 숙제를 채점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장문이란, 단순히 긴 글이 아니라 자유 서술식 글쓰기 과제를 뜻합니다. 주말에 있었던 일을 30분 동안 자유롭게 쓰는 것이었는데, 결과물은 "토요일엔 TV 봤고 일요일엔 아무것도 안 했다"는 수준이 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