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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습니까? 이 질문을 처음 마주쳤을 때 저는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머릿속엔 오래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고, 그 뒤엔 "이제는 끝났다"는 익숙한 체념이 따라붙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끝난 걸까요? 전성기가 지난 세 명의 중년 남자들이 다시 한번 삶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이야기를 보면서, 저도 덩달아 무언가 흔들리는 걸 느꼈습니다.
영광의 시대, 그게 정말 '그때'여야만 할까요
저는 직장 합격 이메일을 받던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수십 번의 서류 탈락 끝에 받은 합격 통보였는데, 그 순간만큼은 진짜로 세상이 제 편인 것 같았습니다. 손이 떨리고 믿기지 않아 화면을 두 번, 세 번 다시 읽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그 설렘의 반쪽은 사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현재를 못 즐긴 아쉬움'이었습니다. 그 때는 그렇게 사는 게 정답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정작 그 순간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피크-엔드 법칙(Peak-End Rule)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피크-엔드 법칙이란, 사람이 어떤 경험을 기억할 때 전체 평균이 아니라 '가장 강렬했던 순간'과 '끝 무렵의 기억'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인지 편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과거를 유독 빛나게 기억하는 건 어쩌면 착각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또 한 가지. 저는 연인에게 처음 고백을 받던 순간도 영광의 시대로 꼽습니다. 서로 첫 연애였고, 모든 게 서툴렀지만 그래서 더 떨렸습니다. 그런데 그 설렘을 '다시는 느낄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해버리는 순간, 앞으로의 삶도 이미 색을 잃게 됩니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과 과거에 갇히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 피크-엔드 법칙에 의해 우리는 과거를 실제보다 더 빛나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영광의 순간을 '그때'로만 못 박는 것 자체가 일종의 인지 편향일 수 있습니다
- 과거를 그리워하는 감정과 과거에 멈춰버리는 태도는 구분해야 합니다
중년의 도전, 처참한 실패가 두려운 이유
열심히 하면 할수록 나보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이 보인다는 느낌, 저도 압니다. 한창 취업 준비를 하던 시절, 도서관에서 새벽까지 버티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저보다 더 독하게 앉아있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그냥 다 포기할까'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런 심리를 사회 비교 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회 비교 이론이란, 사람이 자신의 능력이나 가치를 평가할 때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주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판단하는 심리 메커니즘을 말합니다. 이게 지나치면 동기부여가 아니라 자기 소진(Burnout)으로 이어집니다. 자기 소진이란,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좌절로 인해 신체적·정서적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를 뜻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중년의 도전을 다루는 이야기들이 대부분 "용기를 내면 된다"는 식으로 가볍게 마무리되는데, 실제로는 고장난 몸과 줄어든 체력, 그리고 실패했을 때의 사회적 시선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그 무게가 청년의 도전과는 결이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늙고 지쳐버렸다"는 표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아직 충분히 남아있는데, 자신을 그렇게 규정해버리는 건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나를 어떤 존재로 못 박는 순간, 그 틀 밖으로 나갈 용기도 함께 사라집니다.
용기 리부팅, 의지만으론 부족할 때 쓰는 방법
"용기를 내면 된다"는 말, 맞는 말이지만 때로는 공허하게 들립니다. 용기 자체가 바닥난 상태에서 용기를 내라는 건, 빈 통에서 물을 퍼내라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제가 실제로 해본 방법은, 용기를 '감정'이 아니라 '행동'으로 접근하는 것이었습니다.
행동 활성화(Behavioral Activat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행동 활성화란, 기분이 나아진 뒤에 행동하는 게 아니라 먼저 작은 행동을 시작함으로써 감정 자체를 변화시키는 인지행동치료(CBT) 기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기다리지 말고 일단 뭐라도 하라는 뜻인데,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실제로 써봤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책 한 장, 산책 10분, 유튜브 강의 하나. 이것들이 쌓이면 흐름이 바뀝니다(출처: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
용기가 부족하다면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책이나 영상을 먼저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단, 그것에만 머물러선 안 됩니다. 인풋(input)은 어디까지나 시동을 거는 연료일 뿐, 실제로 달리는 건 본인의 몫입니다.
제 경험상 가장 중요한 건 결과보다 '다시 시작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오십 프로에서 시작해 나머지 오십 프로를 채워가는 과정이 인생이라면, 어느 지점에서 다시 출발선에 서느냐보다 출발 자체가 중요한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도전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게 정상인가요?
A. 정상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실패에 따른 사회적 시선과 회복 비용이 커지기 때문에 뇌가 더 신중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두려움이 커졌다는 건 그만큼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습니다.
Q. 용기가 없는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A. 용기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행동 활성화(Behavioral Activation) 원리처럼, 아주 작은 행동 하나를 먼저 시작하면 감정이 뒤따라옵니다. 책 한 권, 강의 하나, 산책 한 번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실제로 흐름을 만들어 줍니다.
Q.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게 나쁜 건가요?
A. 그리워하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문제는 그 감정이 '지금을 살지 않는 이유'가 될 때입니다. 저도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솔직히 합니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다면, 지금 이 순간을 그때만큼 빛나게 만드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Q. 중년에 새로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고 할 수 있나요?
A. '늦었다'는 기준 자체가 사실 모호합니다. 누군가에게는 40대가 전성기이고, 누군가에게는 60대가 새 출발입니다. 스스로를 '늦은 사람'으로 규정하는 순간 그게 현실이 됩니다. 제 경험상 가장 위험한 건 나이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붙이는 낙인입니다.
결론
영광의 시대가 언제였냐는 질문에, 저는 이제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적어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과거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인간적이고 자연스럽지만, 그걸 현재를 포기하는 이유로 쓰는 건 아깝습니다.
고장난 몸으로 삶에 다시 부딪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건, 그들이 특별히 용감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냥 포기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좌절하고 자책하고 누워있는 시간도 있었겠지만, 결국 일어섰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지금 어느 지점에 있든, 반격은 언제든 시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