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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항상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가장 못되게 구는 상대 역시 가족일까요?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를 읽다가 저도 모르게 멈췄습니다. 저는 가족을 "슬쩍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는 표현이 불편하기는커녕, 이상하게 속이 시원했습니다.
감정구조, 가족의 함정
저는 오랫동안 가족을 '당연한 존재'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늘 그 자리에 있으니까 소중함을 잊고, 가깝다는 이유로 말을 제일 함부로 하게 되는 상대가 가족이었습니다. 밖에서는 말 한마디도 골라가며 하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막상 집에만 오면 현관문을 열자마자 엄마의 "옷 갈아입어"라는 한 마디에도 짜증부터 먼저 나왔습니다. 저는 이게 편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편하다는 감각이 오히려 상대를 가장 많이 다치게 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더라고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근접성 편향(Proximity Bias)'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근접성 편향이란, 가까운 대상일수록 상대의 감정을 덜 고려하고 자신의 반응을 여과 없이 드러내게 되는 심리적 경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가장 편한 사람에게 가장 날 것 그대로의 자신을 꺼내 보인다는 뜻인데, 그게 항상 좋은 방향은 아닌 겁니다.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가 그 지점을 정확하게 건드렸다고 느꼈습니다.
드라마 사랑이 온다는 가족이 주는 따뜻함이나 소속감보다, 오히려 "왜 가족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무거운가"라는 질문을 먼저 꺼낸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많은 가족 이야기들이 사랑과 희생으로 포장되는데, 현실에서 가족은 어떤 타인보다도 더 깊이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고, 말 한마디가 남기는 상처도 훨씬 깊습니다. 그 사실을 먼저 인정하고 시작했다는 점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관계심리, 사랑과 미움 사이
"내다 버리고 싶지만, 결국 가족이다."라는 표현은 처음 봤을 때 좀 센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과 크게 다퉈 집을 나가고 싶었던 날을 떠올려보니, 그 말이 그렇게 낯설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왜 나만 이해받지 못하냐'는 생각뿐이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부모님도 각자의 방식으로 걱정하고 있었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이해가 됐다고 해서 싸움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쉽게 미워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감정의 구조를 '양가감정(Ambivalenc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양가감정이란 한 대상에 대해 사랑과 미움, 끌림과 거부감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은 이 양가감정을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고 봤습니다. 그러니까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미워할 수 있다는 게 모순이 아니라, 오히려 그 관계가 진짜라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겁니다. 가족이라서 화가 더 나는 게 아니라 가족이기 때문에 아직 관계가 살아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드라마 사랑이 온다가 짚어낸 또 하나의 지점은 가족이 동시에 '창조'이자 '파괴'라는 표현이었습니다. 가족은 나를 세상에 있게 한 존재이면서도 나를 망가뜨리고 사라지고 싶게도 만드는 존재. 그 이중성을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꺼낸 것이 이 기획의도의 힘이라고 느꼈습니다. 가족 드라마에서 자주 쓰이는 '화해와 용서'의 서사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감각입니다.
사랑이 온다, 현실공감
저는 항상 드라마를 보기 전에 기획의도를 꼭 읽어보는데, 드라마가 단순히 "가족이니까 참아라"는 메시지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현실에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관계가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무조건 화해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흐른다면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가족 드라마가 갖춰야 할 요소로 '관계 역동성(Relational Dynamics)'을 자주 이야기합니다. 관계 역동성이란 두 사람 이상이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각자의 성격, 역할, 감정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호작용의 흐름을 말합니다. 가족은 처음부터 완성된 관계가 아니라, 매일 부딪히고 배우면서 만들어 가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가족 드라마에서 가장 공감하는 장면은 극적 화해보다도 어색한 공기가 남아있는데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함께 식탁에 앉는 순간이라고 합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가족끼리 아침에 싸우고 나가도 저녁에 아무렇지 않게 밥을 같이 먹는 장면이, 그 어떤 눈물 씬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드라마는 가족을 이상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작은 따뜻함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IMF도 코로나도 다 버텨온 사람들이 지금 이 팍팍한 시간을 견디는 데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가족한테 왜 이렇게 함부로 말하게 되는 걸까요?
A. 근접성 편향 때문입니다. 심리적으로 가까운 대상일수록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게 됩니다. 밖에서 쌓인 감정을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에서 내보내는 건데, 그 안전한 공간이 가족이다 보니 결국 가족이 가장 많이 받아내는 구조가 됩니다. 문제는 그게 편함이 아니라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Q. 가족을 미워하는 감정, 잘못된 건가요?
A. 전혀 잘못된 게 아닙니다. 양가감정, 즉 사랑과 미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감정은 친밀한 관계일수록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가족을 미워한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감정이 있다는 건 관계가 아직 살아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Q. 가족 드라마가 뻔하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뭘까요?
A. 대부분의 가족 드라마가 갈등을 만들고 극적으로 화해시키는 패턴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가족 관계는 그렇게 깔끔하게 해소되지 않습니다. 갈등이 남아있는 채로 그냥 같이 사는 게 현실에 더 가깝고, 그걸 제대로 담아낸 작품이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Q. 가족 갈등, 어떻게 접근하면 나아질 수 있을까요?
A. '이해하면 싸움이 사라진다'는 생각은 조금 내려놓는 게 좋습니다. 이해해도 싸웁니다. 중요한 건 싸운 다음에도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관계 역동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가족 관계는 완성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결론
기획의도를 다 읽고 나서 제게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가족이란 무엇일까?"였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답하게 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더 많이 부딪히고, 그럼에도 쉽게 끊어낼 수 없는 관계. 가장 어렵고 가장 오래 배우게 되는 관계가 가족인 것 같습니다.
가족이라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또 서운하고, 싸우고, 화해하지 못한 채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다음 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같은 공간에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게 가족이라는 관계가 가진 가장 특별한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 https://program.kbs.co.kr/2tv/drama/loveonthemenu/pc/detail.html?smenu=c8e5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