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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어른이 되면 방황이 끝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그 전제가 틀렸다고 봅니다. 한 여자의 태어남부터 엄마가 되기까지를 통째로 담아낸 드라마를 보면서, 제 사춘기 시절 엄마에게 무작정 반항하던 기억이 불쑥 올라왔습니다. 그때는 분명히 내가 잘못했는데도 잘못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 감각이 드라마 속 인물과 너무 겹쳐 보여서 한참을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습니다.
방황, 어른에게도 찾아온다
일반적으로 방황은 청소년기에 끝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사회초년생이 된 뒤에도 저는 꽤 오랫동안 갈 방향을 못 잡고 이리저리 치였습니다. 드라마 속 애순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인이 된 뒤에도 눈칫밥을 피해 도망치듯 살고, 누군가에게 기대어 대학도 가고 시인도 되겠다는 꿈을 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른이면 다 알아서 해야지"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한 기대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발달심리학(developmental psychology)에서는 만 18세 이후에도 정체성 탐색이 지속되는 시기를 '성인 진입기(emerging adulthood)'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성인 진입기란 청소년도 완전한 성인도 아닌 약 18~25세 구간을 의미하며, 이 시기에는 직업·관계·가치관 등 삶의 핵심 선택이 유동적으로 열려 있습니다. 미국 심리학자 제프리 아넷이 제안한 개념으로, 출처: APA(미국심리학회)에서도 이를 정식 발달 단계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저도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 꿈이 많은 아이였을 때 무작정 그 꿈을 좇았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조금은 단단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방황이 낭비처럼 느껴지는 건 그 한복판에 있을 때뿐이고, 시간이 지나면 그게 결국 자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 성인 진입기(emerging adulthood): 정체성 탐색이 성인이 된 후에도 지속되는 발달 단계
- 드라마 속 애순이는 성인 이후에도 갈 곳을 찾아 헤매며 이 시기를 고스란히 보여줌
- 방황의 경험이 쌓여 결국 삶의 뿌리가 된다는 것이 드라마 전체의 큰 흐름
세대차이, 일상이 더 현실적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제가 가장 고개를 끄덕인 장면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대화가 엇갈리는 장면들이었습니다. 부모는 "형평껏 가진 만큼 사는 거지"라고 하고, 아들은 "그게 싫어서요"라고 받아칩니다. 둘 다 틀린 말이 아닌데 대화가 이어지질 않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세대차이를 그냥 "가치관이 다르다"는 식으로 뭉뚱그리지 않고, 아들이 왜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는지를 드라마가 꽤 공들여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세대 간 커뮤니케이션 단절(intergenerational communication gap)은 심리학과 사회학에서 꾸준히 연구되는 주제입니다. 여기서 세대 간 커뮤니케이션 단절이란 서로 다른 시대적 경험을 가진 세대 간에 언어·가치관·기대치의 차이로 인해 소통이 어려워지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가족 관계 연구에서도 부모와 성인 자녀 간의 정서적 거리감이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도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 부모님께서 세대 차이를 느끼신다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제가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 서운했는데, 드라마를 보고 나서 그게 서운한 게 아니라 서로가 살아온 시간의 두께가 다른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차이 자체가 아니라 그 차이를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서로 못 찾고 있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드라마는 그 언어를 찾는 과정을 아주 긴 호흡으로 보여줍니다. 금명이 아빠가 "떨어져도 아빠가 있다"는 한 마디를 남기는 장면이 특히 오래 남았습니다. 설명이 길지 않아도, 그 한 마디가 얼마나 든든한 언어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으니까요.
폭싹 속았수다, 짝사랑같은 가족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를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짝사랑'을 고르겠습니다. 엄마 광례가 딸을 걱정하며 허구한 날 전복 팔아 번 돈을 쌓아가는 것도, 아빠가 운동회 날 뒤에서 그물을 펼치고 서 있는 것도 모두 돌아오는 기대 없이 먼저 내어주는 짝사랑의 형태입니다.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에서는 부모-자녀 관계를 초기 유대감이 평생의 대인관계 방식으로 이어진다는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여기서 애착 이론이란 영국 심리학자 존 볼비가 제창한 이론으로, 쉽게 말해 어릴 때 부모와 어떻게 연결되었느냐가 이후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에 깊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드라마 속 애순이가 성인이 된 뒤에도 안정적인 자리를 찾아 헤매는 모습은 이 애착 이론의 맥락에서도 읽힙니다.
제가 직접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건, 이 드라마가 인생의 '일부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큰 그림으로 그린다는 점이 다른 드라마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막상 우리가 다른 드라마를 볼 때 일생의 대부분을 한 화면에 담은 서사는 생각보다 드뭅니다. 출생부터 노년까지 이어지는 생애 주기(life cycle) 전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단순한 가족극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를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이라고 봅니다.
저는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않아서, 지금 이 드라마를 보는 감각과 훗날 자녀를 낳은 뒤 다시 볼 때의 감각이 얼마나 달라질지 솔직히 상상이 잘 안 됩니다. 지금은 현실에 치여 살고 있는 애순이의 모습이 공감됐는데, 나중에는 광례와 관식의 눈으로 보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게 오히려 더 궁금해졌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어른이 돼서도 방황하는 게 정상인가요?
A. 일반적으로 방황은 청소년기에 끝난다고 알려져 있지만, 발달심리학에서는 성인 진입기(만 18~25세)를 거치며 정체성 탐색이 계속된다고 봅니다. 오히려 이 시기의 방황을 충분히 겪어야 이후의 삶이 더 단단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제 경험상으로도 그 시간이 결코 낭비는 아니었습니다.
Q. 부모와 자녀 사이의 세대차이, 어떻게 좁힐 수 있나요?
A. 세대 간 커뮤니케이션 단절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드라마가 보여주듯,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의 언어를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관계를 바꿉니다. "형평껏 가진 만큼 사는 거지"와 "그게 싫어서요"가 모두 맞는 말일 수 있다는 걸 양쪽이 인정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Q. 이 드라마가 다른 가족 드라마와 다른 점이 뭔가요?
A. 대부분의 드라마는 인생의 특정 국면만 집중적으로 다루는데, 이 작품은 한 인물의 생애 주기 전체를 큰 그림으로 그립니다. 그래서 보는 시점, 즉 자신이 청년인지 부모인지에 따라 공감되는 장면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같은 드라마를 10년 뒤에 다시 봤을 때 전혀 다른 감정이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Q. 드라마 속 애순이처럼 눈칫밥 먹는 상황, 실제로 얼마나 흔한가요?
A. 재혼 가정이나 확대가족 구조 안에서 자녀가 심리적 불안정을 경험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합니다. 애착 이론에 따르면 이런 환경이 장기화되면 불안정 애착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다만 드라마가 보여주듯 그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도 충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결론
청년의 눈으로 이 드라마를 보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애순이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드라마가 진짜 말하고 싶은 건 그 고단함을 뚫고 기어코 무언가를 키워낸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방황도, 세대차이도, 짝사랑 같은 부모의 마음도 결국 살아있는 동안 계속 이어지는 것이고, 그게 삶이라는 걸 드라마는 꽤 긴 호흡으로 설득해 냅니다.
지금 부모님과 대화가 잘 안 된다고 느끼시는 분이라면, 한번 이 드라마를 보시길 권합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드라마가 대신 정리해 줄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부모가 된 뒤에 다시 한번 꺼내 보시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장면에서 멈추게 될 것입니다.